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작년까지 자만심에 가득 차 서양잔디(캔터키 블루 그래스)를 키워봤습니다. 초록 잔디를 아예 못본 것은 아니지만 성공이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웠습니다. 1년에 3개월 정도 아래처럼 상태 좋은 잔디를 보기 위해

몸이 힘든 건 각오했지만, 들이는 노력대비 효과가 너무 안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서양잔디는 GG를 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드디어 한국잔디를 심어보고자 합니다.

한국 잔디도 찾아보니 중지, 세녹, 밀록, 세밀 장성샛별 등 여러 품종이 있는 것 같습니다. 중지가 공원이나 산소 등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품종이고, 엽폭이 넓고 깎았을 때 살짝 날카로운 기분이 드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한국 기후 및 병충해에 강하고 볕만 잘 든다면 알아서 번져서 풍성한 잔디밭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세녹, 밀록, 세밀은 한국 중지를 개량한 품종으로 잎이 가늘고 밀도가 높으며 색도 진한 녹색으로 서양잔디와 같은 기분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골프장에도 사용되는 품종이라고 합니다.

가장 잎이 가늘고 부드럽다는 세밀을 해보고 싶지만, 저희 마당은 그림자가 드는 공간이 조금 있는 편이라 생존력이 조금 더 강한 세녹 으로 해보기로 합니다.

올해는 한국잔디로 바꾸면서 또 몇 가지 큰 결심을 해봅니다.

두 결정 모두 비용이 매우(=몇배, 몇십배) 크게 올라가는 결정들이라 쉽지 않았지만, 더이상 잔디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올해는 초록 잔디를 마음편히 다리뻗고 감상하고도 싶었습니다!!!

는 X뿔... 이 결심을 하던 즈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내가 휴직을 한답니다.

그렇다는건... 월 수입이 반으로 줄다는거고

그렇다는건... 잔디를 할 돈은 없다는 거고

그렇다는건...

그래서... 다시 시작합니다. 네, 제가요. 기존 잔디를 긁어냅니다.

사랑하는 아이들도 도와줍니다. (제발 들어가, 아빠 혼자해도 돼)

긁어낸 잔디 흙을 털어 나중에 쓸 모래를 확보하고, 폐기물 부피도 줄여봅니다.

이맘때쯤, 잔디를 여기저기 알아보는 중에 귀인을 만났습니다. 주택 관련 카페에서 소개받은 잔디 판매 업자이신데 제가 혼자서 고군분투 잔디를 키우는 것을 가엽게 보셨는지 유선으로, 메신저로 컨설팅을 정말 친절하게 많이 해주셨습니다. 잔디 종자 연구도 직접 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내공이 엄청 깊으시고 돈 한푼 입금하지도 않은 저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되실지 모르겠지만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돈내산으로 잔디를 주문한거니 추후에 소개 필요하신 분은 연락처 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실패 요인을 꼽아 보면

해가 잘 안드는 것은 이사를 가지 않는 이상 고칠 수 없는 부분이고, 배수를 개선해보고자 합니다. 배수를 제대로 하려면 지금 있는 토분 있는 흙을 30~40cm 내버리고 모래를 대신 체우는 방법이 있는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올해는 지금 있는 흙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표면 흙을 30cm 정도 깊이로 부숴주기로 합니다. 로터기라를 장비를 삽니다.

기존에 있는 제 제설장비에 앞부분만 교체해서 쓸 수 있는 부품입니다.

로터기로 땅을 뒤엎어줍니다.

딱딱한 땅은 곡괭이로도 부숴줍니다.

부숴진 땅의 단면을 보니까 그 동안의 토분 퇴적층이 보입니다. 그동안 왜 물이 잘 안 빠졌는지 알 것 같습니다.

땅을 부드럽게 잘 갈아 엎어줬습니다.

바로 땅 모양을 잡으려다가 정원 물빠짐이 조금 더 잘 되게 하기 위해 유공관이란 걸 묻어줄 예정입니다. 유공관은 구멍이 여기저기에 무수히 많이 뚫린 파이프 관으로 땅안에 심는 배수로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땅에 V자 경사를 만들고 빨간 화살표를 따라 유공관을 심어서 배수를 개선해볼 생각입니다.

철물점에서 유공관을 사옵니다. 제 카니발은 이제 사람보다 이런 게 더 자주 실립니다.

정원의 집수정 옆쪽에 구멍을 뚫어서 유공관을 연결할 준비를 합니다.

유공관 묻을 통로를 팝니다.

유공관을 촘촘한 방충망으로 감싸줍니다. 이는 흙이 유공관 구멍을 막는 것을 방지해줍니다.

파 놓은 통로위에 부직포를 한겹 덮고 유공관을 설치해줍니다. 부직포도 사방에서 침투하는 흙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마침 집 뒷편에 강자갈이 많아서 유공관 위를 강자갈로 덮어줍니다. 보통은 모래로 한다고 합니다.

강자갈 위에는 흙이 침투하지 않도록 모기장 2겹을 덮어줍니다.

마지막으로 흙을 다시 메워줍니다.

그리고 방망이 깎는 기분으로 흙을 잘 다지고 땅 모양을 만들어줍니다. 물빠짐을 위함 기울기도 공들여 만들어줍니다. 계곡의 중심을 잡으려고 끈을 하나 걸고 시작했어요.

V자 경사가 조금 부족한가 싶긴 한데, 그래도 이정도로도 충분히 배수가 개선되리라 기대합니다.

이제 4월말에 조금 더 따뜻해지면 세녹 롤잔디를 받아서 깔아볼 생각입니다. 올해 또 직접 작업하느라 삭신이 안 쑤신 날이 없지만, 하고 나면 뿌듯할 거 같네요. 그리고 올해 여름은 푸릇푸릇한 잔디를 감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