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부터 16살까지 태권도 선수로 살아왔다. 17살부터는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러다 대학에 온 나는, 탕수육을 먹을 때 부먹이 좋냐 찍먹이 좋냐는 질문에 답하기가 어려웠다. ‘주는 대로 먹’는 파였기 때문이다. ‘주는 대로 먹는 파야’ 라고 답하면 될 일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주관 없는 흐릿한 인간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탕수육을 어떻게 먹는 사람인지 꼭 알아내리라고. 그 길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찾아냈다. 아니, 결심했다.
나는 ‘담먹파’다.
탕수육을 소스에 2분 정도 담갔다 먹으면 적절히 바삭하면서도 고기에 소스가 충분히 밴다. 탕수육 먹는 것에 이렇게 진심일 필요가 있을까 하겠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탕수육이 중요하다기 보다, 탕수육을 비롯하여 당시 나의 주관이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태권도 선수 때는 운동만 하느라, 운동을 그만둔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부터는 공부만 하느라 나의 주관과 취향에 대해서 알아볼 시간이 부족했다. 탕수육은 스스로에 대한 무지를 인식하게 한 트리거였다.
전공 탓에 고대사와 인류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현재 인류와 미래 인류의 방향에 대해서 종종 고민하곤 한다. ‘사람’이라고 하는 존재는 점점 더 날카로워 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 날카로워 질 것 같다.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뚜렷하게 구분하기 시작하고,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점점 더 확실하게 의사 표현 하고 있다. 자신의 관점과 취향이 점점 더 날카로워 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여러 매체와 기술의 발달이 적절하게 섞이면서, 사람들은 날카로워진 본인을 표현하는 행위를 즐기게 되었다. 자신이 허락한 범주 안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며, 본인을 접한 이들과 소통하는 것을 사랑한다. 심지어는 자발적인 학습으로 스스로의 표현 능력을 향상시킨다.
‘나는 담먹파다.’라고 선언한 날, 스스로 날카로워진 요즘 사람들의 반열에 오른 것 같아 기뻤다.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쁨은 하나의 바람으로 이어졌다.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글, 영상, 프로그래밍, 음악 등 자신이 자신 있는 매체로 표현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일로 밥 벌어먹고 살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바람과 내가 창업한 출판 브랜드 ‘글에고리’는 묘하게 섞이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새로운 모델이 만들어졌다. 이름은 CYNAPSE이며, (사람들의 creativity 신경 세포에 연결되어 ‘영감’을 전달한다는 의미이다. 뉴런에 연결된 synapse처럼.) 표현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이다.
그 아래에는 글에고리(글로써 표현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와 코드체인(프로그래밍으로 표현하는 개발자들을 위한 브랜드)이 자회사 형태로 존재한다. 물론 글에고리(생후 4개월, 80명의 작가님들과 함께 13권의 책을 만들고 있음)를 제외한 두 브랜드는 아직 실체가 없고 나와 우리 팀원의 머릿속에만 존재하지만, 올여름 안에 두 브랜드의 실체도 만들고자 치열하게 달리고 있다.
“연구 2. 찍먹러들의 니즈” 리포트는 코드체인, 글에고리 그리고 CYNAPSE의 메인 타깃인 표현하는 사람들(=찍먹러들)의 니즈를 연구하는 리포트이다. 어떠한 형태로든 그 니즈를 충족시키는 무언가를 세 브랜드에서 각각 제공할 것이다. 유의미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면, 그 즉시 글로써 기록할 예정이다. 현재는 머리말만 작성할 수 있는 단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