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노노에서 카페를 개설할 때, '카테고리를 선택해 주세요.' 라는 화면이 나왔다. 2021년 5월부터 창업을 시작한 이후로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져 온 질문이자, 나를 최근까지도 괴롭혔던 질문이다. 이번 카페 개설에서 '스타트업' 카테고리를 선택한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스타트업이라고 확신해서가 아니다. 단지 '기타'를 선택하기에는 너무 불분명한 것 같아 스타트업을 선택한 것뿐이다.
처음부터 내가 하는 일의 카테고리에 대해 의문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스스로 흔히들 '스타트업'이라고 부르는 것을 시작한 것이라고 확신했다.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당당히 '나 요즘 스타트업 시작했어'라고 답했던 때가 있다. '오 신기하다! 아이템은 어떤거야?'라고 물으며 호기심을 내비치는 반응들이 뿌듯했으며, 내가 꿈꾸는 비전을 펼쳐놓는 것이 즐겁기만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요즘 뭐하고 지내?'라는 질문이 두려워졌다. '그러게,,, 요즘 내가 하는게 뭘까?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걸까?' 하며 내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연구 1. 카테고리"리포트는 내가 창업한 것의 카테고리, 내가 20대를 바치며 하고 있는 일의 범주에 대한 나만의 리포트이다.
2. 스타트업
2021년 5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전역일로부터 1년하고도 4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전역 당시 나의 꿈은 최태성, 이다지를 넘는 대한민국 역사 1타 강사였다. 수월하게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역사는 1등급을 놓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역사를 알려주는 일이 너무나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이라는 뱀이 나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 나이가 25인데 늦은거 아닐까?' '요즘 출산율이 낮아져서 학생이 부족하다는데, 과연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온갖 불안과 의문들이 나의 몸을 휘감았다.
불안에 질려 불안이 불안으로 느껴지지도 않을 때쯤, 수강하고 있던 교직 수업 과제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2028년부터 논,서술형 수능 도입" 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수능이 바뀐다고?'
가장 처음 든 감정은 불안이었다. 그 불안은 바뀐 수능 체제에 맞춰 수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 다음 든 감정은 설렘이었다. 그 설렘은 나에게 새로운 수능 체제가 새로운 길로 인도해줄 것 같다는 근거 없는 설렘이었다.
두 번째의 설렘이 첫 번째의 불안을 집어삼킨 그날, 나는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했다. 아이템은 새로운 수능체제에 맞춘 온라인 논술 교육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었다. 설탭과 논술학원 알바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기에, 그 둘을 적절하게 섞으면 나만의 멋진 온라인 논술 교육 플랫폼이 탄생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2021년 5월 16일, 나만의 드림팀이 완성되었다. 선장이라는 타이틀이 너무나도 뿌듯했고, 선원들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신나게 스타트업 항해길에 올랐다. 웹사이트를 만들고, 화상수업 시스템을 연동해주는 스타트업과 미팅도 가지고, 혼자서 강의도 찍어보고, 학생을 모집하는 포스터도 준비했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다고 느낀 8월, 우리는 인스타를 통해 사전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준비해둔 포스터를 노출시킨 첫날, 너무 긴장이 되어 정상적인 신진대사가 일어나지 않았다. 속도 매스껍고 심장은 미칠듯이 뛰었다. 이러한 역동적인 나의 상황과는 달리, 웹페이지 속 신청자 수는 0에서 전혀 미동도 없었다. 0은 3일이 지나도 변함이 없었으며, 3일이 7일이 돼도, 10일이 돼도 마찬가지였다.
완벽한 실패였다. '시장 핏에 맞지 않았나?' '너무 전문성이 없어 보였나?' '마케팅이 너무 부족했나?' 여러 의문들이 내 머리를 채웠고,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책이라는 물성에 꽂혔다. 평소에 전공 관련 서적만 보던 나지만, 그날따라 책에 온 관심이 쏠렸다. 논술 교육을 준비하다 보니 글이 좋아졌던걸까. 책의 물성에 장악당한 나의 시야는 다른 곳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실패에 대한 명확한 결론 없이 출판이라고 하는, 너무나도 낯선, 세계로 빨려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온라인 논술 교육 플랫폼의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 확실하지도 않은 영역으로 황급히 도망친 것 같다. 그치만 나름대로 그 새로운 영역이 즐거웠고, 새로운 비전을 보게 되었다. 그렇게 현재의 '글에고리'가 탄생하였다. 출판 영역에서 글에고리(온라인 논술 교육 플랫폼 이름도 글에고리였다.)를 만들 때까지만 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카테고리는 '스타트업'이라고 확신했다.
3. 스타트업?
5월16일에 시작한 온라인 논술 교육 플랫폼에서 출판쪽으로의 전환을 결심한 날은 8월 18일이다. 작년 연말, 그러니까 2021년 11월 정도까지만 해도 나는 스타트업의 범주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다 12월의 어느날, 우연한 계기로 내가 속한 카테고리에 대한 심각한 혼동이 왔다. 그 우연한 계기는 다름 아닌 아버지였다.
아버지에게 창업 사실을 알린 것은 21년 9월 말이었다. 자의로 알렸다기 보다는, 그때가 휴학 신청 기간의 마지노선이었으니 사실상 타의였다. 아버지는 평생을 형사로 살아오신 공무원이시다. 그렇기에 내가 더 머뭇거렸건 것 같기도 하다. 평생을 안정적인 직장에서 정기적인 봉급을 받으며 4인 가족을 아주 멋지게 지켜내셨기에, 나의 불안하고도 무모한 도전을 반대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창업 소식에 아버지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어릴적부터 '건강하게, 하고 싶은 일은 해보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긴 했는데, 그 말이 진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역시 아버지는 내 생각보다 더 멋진 분이라고 생각했다.
응원은 했지만 아들의 창업이 내심 걱정되신 아버지는 주변에서 들은 이야기를 종종 내게 전해주시곤 했다. 그중 나의 정체성을 흔든 말이 섞여 있었다. "스타트업은 J커브를 그리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들이라는데, 자신있냐?"
이 질문이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스타트업의 정의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스타트업은 맞긴 할까? 정말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다.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서점, 식당, 카페 사장님들과 다른 점을 스스로도 찾지 못했다. 심각했다. 25년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이토록 열정을 갈아 넣고 있는 것일까...혼란이라고 하는 악마는 계속해서 강해졌고, 내 마음 속에서 '사업 그냥 접을까'하는 생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4. 브랜드
다행히도 최근 들어 나의 카테고리 집착증에 안정기가 찾아왔다. 예전부터 불교 사상에 관심이 많았는데, 해탈의 개념이 특히 좋았다. 나의 안정기는 해탈의 개념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었다.
나의 고민에서 해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어쩌면 너무나도 혼란스러워서 스스로 고민하기를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가 어찌됐든 이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카테고리를 설정하는 것에서 해탈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주위에서는 "요즘은 뭐하고 지내냐"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로스쿨, 대기업 취직, 행시, 임용고시 등 명확한 일을 준비하는 주변인들에게는 마지막 학기만을 앞두고 두 학기 연속 휴학을 결심한 나의 행보가 썩 궁금하긴 할 것이다. 카테고리 집착증으로부터 해탈한 이후 이런 질문에 대한 대외용 답을 준비했다.
"표현하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를 만들고 있어."
이 정도면 '스타트업'의 카테고리에서, 물론 '기타'에서도, 해탈한 것 같다.
5. 맺음말
카테고리에 대한 수개월 간의 연구 결과, "의미 없음"으로 결론지었다. 나를 포함하여 누군가가 나를 스타트업 대표로 규정하든, 출판사 대표로 규정하든, 슬리퍼 파는 사람으로 규정하든 "아무 의미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