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한남동으로 이사를 왔을때 크게 아쉬웠던 일은 리움미술관의 휴관이었습니다. 대문을 잠궈두지는 않아서 칼더의 모빌이나 아니쉬 카푸어의 조각을 멀리서 지켜볼 수는 있었지만, 로랑 그라소의 네온 글씨에는 한참동안 불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더 길게 이어진듯한 4년의 휴관을 지나, 작년 10월, 드디어 리움미술관이 재개관을 했습니다. 그리고 전시 예매를 선착순으로 받았습니다. 티켓팅을 성공해 본 역사가 없는 사람에게 선착순이라는 단어는 슬픈 단어입니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멤버십을 결제했습니다. 시간을 돈으로 사는 어엿한 어른입니다. 어느때나 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게 된 회원1은 그날부터 미술관을 산책로로 사용하게 됩니다. 한 층만 보고 나오기도 하고, 한 그림만 보고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커피만 마시고 라운지에 앉아서 책을 보기도 했습니다. 얼마전에는 구름산책자 전시를 다녀왔습니다.
예약 제한 없이 갈 수 있게 되자, 새로운 전시의 첫번째 방문은 보통 오디오가이드 없이 둘러봅니다. 말끔한 설명 덕분에 이해되는 구석도 좋지만, 내 마음대로의 선곡으로 둘러보는 재미도 좋습니다.
구름산책자에서 가장 좋았던 그리고 동시에 가장 아쉬웠던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SF소설 이었습니다. 작은 방에 책자 하나가 놓여있는 방식이었는데, 한 명씩 줄을 서서 들어가야 했습니다. 소설은 너무 재미있는데, 읽을 시간은 부족하고, 뒷사람은 계속 기다리고, 그러니 빠르게 읽어야 할 것 같고, 그러기에는 분량이 너무 많고.. 복잡한 마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몇 장만 읽다 나왔습니다. 기프트샵에서도 책자는 판매하지 않았습니다. 도대체 그 뒷장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알 길이 없습니다.
홍민키 작가의 '리얼 서바이벌 가이드 공중도시 2화: 디지털 안내견 똘똘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도 넋을 잃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시각으로 기술 중심적인 편향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다루는 영상입니다. 저도 모르게 '시각'이라는 단어를 쓰고 놀랐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라고 고쳐쓰면 좋을까요? 무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참 쉽게 무심해집니다.
처음 리움에 간 날을 기억합니다. 무슨 국보가 이렇게나 많은지. 내가 아는 작가의 이름은 왜 계속 보이는지. 한 개의 도자기를 비추는 조명은 어쩜 이리 많고, 왜 완만하면서도 오르기 힘든 언덕 위를 올라야 하는지. 갈 때 마다 다른 감상을 가지고 돌아오지만, 중앙 통로를 올려다보는 일은 바뀌지가 않습니다. 매번 같은 자리에서 목 아프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사진을 찍습니다. 질리지 않는 풍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