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설계를 하기 전에 건축주가 집짓기에 대한 예습도 많이 해서 많은 지식을 쌓고 준비가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책을 싫어 하는데도 아래 책들을 마구 정독한 기억이 있네요.
물론 건축주가 배경지식이 많으면 나쁠 것은 없습니다. 설계사한테 불가능한 요구사항을 고집할 일도 줄어들고, 가끔은 무리하게 디자인을 추구하는 설계사가 있다면 이를 견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공부에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설계사는 무지한 건축주를 잘 가르치면서 리딩하는 역할도 함께 합니다. 설계가 짧게는 2~3개월 부터 길게는 6개월까지 진행되면서 건축주도 준전문가가 되니 처음부터 너무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 단계에서 설계사가 내주는 숙제?를 잘 해오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공부를 하면 적당한 것 같습니다.
모든 건축프로젝트마다 설계 과정이 같을 수는 없겠지만, 저희 과정를 복기하면서 경험을 공유해보겠습니다.
계약
설계사를 선정하고 계약을 합니다. 보통 설계비는 건축물의 면적에 비례하고, 감리 (=추후에 시공사가 설계대로 공사를 잘하는지 검사)까지 요청한다면 추가비용이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최소 기간은 설정하진 않지만 최대 기간(저희는 6개월)을 보통 정합니다. 계약을 하고 나서는 2~3주에 한번씩 오프라인 미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메일과 메신저로 많은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자기 소개 리포트
가족 구성원 소개 및 생활 패턴, 집에 있는 가구 및 전자제품의 목록 및 크기 등등 여러 리포트 작성이 첫번째 숙제였습니다. 집 얘기보다 서로를 잘 이해하고 시작하자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동적이였어요. 나중에 보니까 저희가 보낸 모든 리포트를 프린트해서 자세히 잘 읽어보시더라구요.
집 모양 잡기
집의 큰 모양을 잡아 가는 과정입니다. 건축주가 이해하기 편하도록 주위 지형지물을 스티로폼 블럭으로 만들어서 가져오셨습니다. 블럭을 이렇게 저렇게 대가면서 집의 구조를 잡아봅니다.
집 내부 공간 만들기
내부 공간을 정하는 과정입니다. 건축주가 방의 갯수와 종류를 요구하고, 위에서 나열한 큰 가구와 가전의 크기도 반영되어 내부 공간의 초안이 잡혀가는 과정입니다. 계단실을 어디에 둘지 고민했던 기억이 가장 많이 남네요. 계단실이란게 아래/윗층 양쪽의 면적을 사용하는 공간이라 어디에 두는지가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참 중요하더라구요. 이 과정에서도 아래와 같이 폼보드 모형 여러개로 만들어서 건축주의 이해를 도왔습니다.
도면 검토, 피드백 (무한반복)
이제 큰 틀이 잡히고 종이로된 도면이 오갑니다. 설계사무소가 설계도면을 보내주면 건축주가 검토해서 피드백을 주고 하는 과정이 매우 긴 기간 반복됩니다. 이 과정에서 방이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원안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고민과 변심의 반복입니다.
이쯤 되면 건축주들이 도면을 읽는 능력도 매우 향상되고 설계사와 대화하는 내용의 수준도 전문용어도 사용하며 꽤 높아집니다. 저희 부부는 처음에 공간에 대한 전달을 잘 해보고자 모눈종이, 기름종이 가릴 것 없이 많은 방법을 동원했습니다. 나중에 결국에는 제가 오토캐드, 스케치업 등의 설계 프로그램을 배워서 도면을 직접 고쳐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계사는 건축주의 무리한 요구를 가끔 설득하고 만류시켜 주고, 건축주는 설계사무소의 무리한 디자인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 그래서 앞선 포스트에서 얘기한 '소통' 매우 중요합니다. 서로 긴 시간 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감정이 들어갈 수도 있고 서로 빈정이 상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니다.
3D 모델링
어느 정도 설계가 마무리 되어간다면 스케치업이라는 프로그램으로 3D 모델링을 해서 집 모양을 보여줍니다. 처음으로 이 영상을 봤을 때, 소리치면 감탄한 기억이 있습니다.
내장재 외장재 재료 보러 다니기
필수는아니지만, 혹시나 설계에 반영할만한 부분이 없을지 (예를 들어 특정 싱크대 및 변기의 크기) 고민을 위해서 오프라인 매장이나 박람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상세 설계
설계사무소가 지금까지 완료한 도면으로, 전기, 설비, 지진설계 등의 상세 설계에 들어갑니다. 여기서 보통 건축주가 할일은 크게 없지만 저는 집에 IoT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전기/통신 설계에 많은 피드백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네요. 완성된 설계도들로 책 한권이 제본되어 나옵니다. 이 도면 복사본으로 설계사가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합니다. 건축법에 위배된 사항은 없는지 혹은 지역별 규칙를 잘 따랐는지 등의 확인이 되면 최종 설계도면 과 건축허가가 나오고 설계 과정이 끝이 납니다.
지역별 규칙
나라에서 제시하는 건축법 외에 지역별로 규정하는 규칙들이 있기도 합니다. 저희 동네는 박공지붕(=경사지붕)이 있어야 하고, 집의 외장재 색상이 제공된 50가지 색 안에서만 선택할 수 있고, 생태면적율(=녹지의 비율)이 어느 비율 이상이여야 하고 하는 등의 규칙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