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땅을 잘 골랐으면, 이 땅에서 우리 가족한테 가장 잘 맞는 집을 설계해줄 설계사무소를 선택할 차례입니다. 건축과정의 주체들을 나열해보면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해 개발프로젝트의 역할에 대입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건축주 (= 나, 프로젝트 매니져, 상위기획자)
설계사무소 (기획자, 디자이너)
시공사 (개발자)
감리사 (QA, 테스터)
건축주가 설계사, 시공사, 감리사를 각각 고용합니다. 이 3주체가 서로 모르는 사이로 유기적으로 잘 협력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해나가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 그래야만 각 주체간 서로 견제를 하면서 소위 공사비 부풀리기, 부실공사, 돈이 낭비되는 상황 등 불미스러운 일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단독주택 같은 작은 건축 프로젝트 (저한테는 엄청 큰 프로젝트이지만, 건축 분야에서는 미니 프로젝트에 속하나 봅니다.) 에서는 각 주체간 프로젝트를 이미 많이 함께 해본 경우도 있고, 시공사가 설계까지 하던가 설계사가 감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일해본 업체들를 선정하여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높히되 외부 감리 기관을 고용해서 견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설계비를 아까워 하지 말라
설계와 시공을 함께 하는 곳을 선택하는 것보다 전문 설계사무소를 알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당장 설계비가 몇백 ~ 몇천만원이 더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설계와 기획이 세밀하고 잘 짜여 있다면 전체 프로젝트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적게 발생하고 그만큼 추가적인 건축비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설계가 잘못 되어 시공과정에서 다른 결정들이 들어가면 그때는 수백, 수천만원의 문제가 아니라 수억원도 추가적으로 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계에 드는 돈은 결코 아까운 투자가 아닙니다.
집을 짓고 나면 보통 계획한 돈의 20%는 더 쓴다고 해요. 제가 봤을 때 건축 과정에서 건축주의 변심이 가장 큰 이유인데, 저는 그 게 다 설계가 꼼꼼하게 안되어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획한 예산보다 10% 정도 더 썼어요. 이것도 설계 번경이라기 보다 재료 변경 등 다른 요인에 의한 증가였어요. 설계비 투자한 덕을 잘 봤습니다.
내가 원하는 집 그려보기
'단독주택 설계' 키워드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실은 좀 막막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어떤 집을 원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가 설계를 시작할 당시에 공중파 및 종편에서 단독주택 관련 프로그램들이 막 한두편씩 생기던 때였습니다. 운이 좋아서 아래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그제서야 제가 원하는 집의 모양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등등 단독주택 소재로 한 프로그램들이 정말 많아서 이 프로그램들만 돌려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더라구요. 우선은 영상, 티비, 책 등을 보고 가족들과 의논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집이 어떤 스타일의 집인지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설계사 검색하기
포털에서 이미지 검색을 해보면 위에서 내가 만들고 싶은 집과 스타일이 비슷한 사진들을 찾을 수 있고
많은 경우 그 링크가 설계사무소의 포트폴리오로 연결됩니다.
저희는 한 5군데 후보를 선정하고 각 설계사무소에 연락해서 미팅 날짜를 예약했습니다.
설계사 만나기 = 소개팅
각 설계사무소의 대표 소장님들이 첫 미팅을 하러 나오십니다. 지금 돌아보면 건축사와 소개팅 하는 기분이였습니다. 어떤 성격일까? 말이 잘 통할까? 기대반 걱정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때 건축주가 준비해 가야할 건 별로 없습니다. 자료와 사진을 준비해갈 필요도 없고, 그냥 자기 소개와 가족소개를 잘 하고 오는 것이 좋습니다. 첫 만남 부터 서로 집 사진을 주고 받고 이렇게 해주세요 저렇게 해주세요 할 필요는 없습니다. 앞으로 긴~ 여정이니까요. 첫만남에서 판단해야할 중요한 것은 "말과 마음이 통할 거 같나" 하는 것입니다. 왜 소개팅이라고 얘기했는지 아시겠죠?
설계사 정하기
설계 실력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첫만남에서 이걸 알아볼 방법은 사실 거의 없습니다. 포트폴리오에서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많이 했던 걸 확인 했으니, 말이 잘 통하는 사람만 잘 정하면 된다는게 좀 공감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돌아보면 "소통"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3~4개월 길게는 반년씩 설계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설계사와 수십번 만나고 수백번 전화, 메신저, 메일을 주고 받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말이 안 통해서, 내 의견이 반영이 안 되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고 설계 과정에서 거액의 위약금을 내면서까지 설계사를 바꾸거나 심지어 건축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력있고 유명한 스타 건축사와 함께 하는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나는 잘 모르겠으니 알아서 잘 지어주세요" 라는 자세로 집을 지으시려거든 이런 분과 만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집을 지으면서 공부도 좀 하고 설계에 의견을 많이 낼 것이면 내 의견을 잘 들어주는 사람, 비 전문적인 내 얘기도 잘 가공해서 현실화 해주는 "소통을 잘해주는" 건축사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