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키로를 뛰었습니다. 20키로를 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20키로를 뛰어야 합니다. 10키로를 뛰고 난 뒤 반절이 넘었다고 축하해서도 안되고, 18키로를 뛰고 난 뒤 다 왔다고 안심해서도 안됩니다. 꼭 20키로를 다 뛰어야만 20키로를 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0키로를 뛰어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오늘쯤이면 20키로를 뛰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20키로를 뛰기로 했습니다. 20키로를 무사히 뛰었다는 결과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줄까요? 그렇습니다. 10키로도 15키로도 아닌 20키로를 뛰었기 때문에 제가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걸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저 제가 달리기를 시작한지 다섯달 만에 처음으로 20키로를 뛰어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20이라는 숫자는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적당한 거리를 알맞은 시기에 시도해서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20은 다음의 제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확인입니다. 해 본 적 없는 일을 해냈습니다. 잘했습니다. 이제 또 다른 해 본 적 없는 일을 하러 가면 됩니다. 우선은 여섯달째 달리는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오늘도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