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입니다. 오늘은 14키로를 달리기로 한 날입니다. 창 밖을 확인하니 바닥은 젖어있는데, 우산을 쓰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 보입니다. 비가 그쳐 달릴 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먹구름을 보니 달리지 않는게 나을것 같기도 합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멈추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늦게 일어나서 달릴 타이밍을 놓친것 같기도 하고, 뛰기 시작하면 곧 비가 쏟아질 것 같기도 합니다. 런클럽에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허기를 대비해 먹는 식품들도 준비하던데, 제가 가진건 포도당 캔디 두 알 뿐 입니다. 뛰어본 적이 없는 거리를 뛰려니 뛰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늘어납니다. 그래도 내일은 비가 더 많이 온다고 합니다. 내일 모레로 미룬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집니다. 지금 뛰어버리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왼쪽 발목이 저린 것 같고, 찬 바람도 멈출 것 같지 않지만, 일단 집을 나섭니다. 한강으로 갑니다.
갑자기 14키로를 뛰기로 한 이유는 11월 20일에 열리는 하프 마라톤을 신청했기 때문입니다. 내년 5월에 참가하는 마라톤을 뛰기 전에, 한 번은 대회를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달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가득한 운동장에 서보고 싶었습니다. 경기는 6주 뒤 입니다. 얼마전부터 나이키 런 클럽의 하프 마라톤 플랜을 따라가며 조금씩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고 있었는데, 대회를 신청했으니 몇 주의 트레이닝 플랜을 뛰어 넘어야합니다. 지난 3주간 코치의 제안대로 ‘천천히 달리기 - 빠르게 달리기 - 길게 달리기’의 패턴을 섞어가며 달렸습니다. 계속 달리기 위해서는 패턴을 잘 섞어주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 달리는 것도, 거리를 늘리거나 속도를 높이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라고 합니다. 조금씩 변주를 주며 내가 편안한 부분에서 조금씩 나아가야만 계속해서 달릴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달리고 싶으니까 코치님 말을 잘 들어봅니다. 10키로는 어렵지 않게 몇 번 뛰어 보았고, 12키로는 헉헉대며 마쳐본 적이 있으니까, 지금 14키로를 달려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았습니다. 오늘 14키로를 달리면 6주 뒤에 21.1키로를 달릴 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한강에 도착하니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 멀리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 몇 명 뿐입니다. 그래도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이미 젖은 상태라 다시 침대에 누울 수도 없습니다. 일단 달립니다. 달리다 보니 못 뛸 정도의 비는 아닙니다. 바람이 불지만 방해가 되는 정도는 아닙니다. 반대편에도 뛰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지나가고, 축구장에도 사람들이 공을 차고 있습니다. 개를 산책 시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멀리서 족구 동호회의 외침도 들려옵니다. 7키로를 뛰고 돌아오려니, 0.5키로 정도는 더 가서 돌아와도 괜찮을것 같습니다. 7.5키로의 지점에서 돌아 출발 지점을 향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납니다. 포도당 사탕을 까먹었더니 조용해집니다. 점점 비가 거세집니다. 가져온 손수건은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반대편에는 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개를 산책 시키고, 축구공을 차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도 계속 달립니다. 5키로 지점부터는 줄어드는 1키로 1키로의 거리가 부쩍 반가웠습니다. 한시간 반을 달려 출발 지점에 도착합니다. 15키로를 마쳤습니다.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고, 양말이 흠뻑 젖었지만, 스트레칭 할 기운이 남아있습니다. 팔과 다리를 털어냅니다. 숨도 차지 않습니다. 오늘은 집까지도 뛰어 갈 수 있을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해 동거인이 데워준 두유를 마시고, 전자렌지에 돌려준 떡을 잘라 먹습니다. 미루고 싶었던 상황과 아픈 것 같던 발목과 어쩌면 무리한 목표가 아닐까 싶었던 모든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다음주에도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