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는 8K를 달렸습니다. 오랜만에 영하의 날씨에 달린 긴 달리기였습니다. NRC의 프로그램(Grateful 8K Run)을 들으며 달렸습니다. 1킬로마다 코치가 생각해볼거리에 대해 말해주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4키로쯤 지났을 때 코치가 Your best run과 worst run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했습니다.
제 최고의 달리기는 오늘 뛰기로 마음먹은 이 달리기입니다. 아침마다 시작하는 매일의 달리기입니다. 한 달에 한 번도 운동을 하지 않았던 제가 이제는 일주일에 다섯 번씩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기 시작한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운동하지 않는 30대라는 사실이 저를 불안하게 만들었는데, 적게 달리건, 길게 달리건, 빠르게 달리건, 천천히 달리건, 하루하루 달리기를 쌓아나가는 것 만으로 건강해졌습니다.
제 최악의 달리기는 하프 마라톤의 마지막 1키로미터입니다. 페이스 조절을 하지 못해 헉헉 거리며 결승선을 들어왔습니다. 20키로미터까지 잘 달려오다가 체력이 남았다고 페이스를 올렸습니다. 다 왔다고 생각하고 무리를 했더니 숨이 차기 시작했습니다. 턱끝까지 숨이 차올라, 결승선 옆에 서있는 동거인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지도 못했습니다. 최악의 1키로미터를 달렸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제 최악의 달리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몇 주 되지 않았을 때, 페이스가 늦어졌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 걷는 동안 '일시 정지'를 했던 달리기 들이었습니다. 그때는 더 멀리, 더 빨리 뛰고 싶었습니다. 무리를 하니 자주 힘들었습니다. 자주 걸었습니다. 앱을 그대로 켜놓으면 걷는 속도가 반영돼서 낮은 평균 페이스가 측정됩니다. 잘 달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습니다. 포기하고 걷기 시작하면 허겁지겁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일시 정지를 눌렀습니다. 다시 뛰기 시작하면 시작을 눌렀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억입니다.
지금의 저는 페이스를 덜 신경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물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아직 되지 못했습니다.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내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으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페이스를 높이고 싶은 사람입니다. 잘 달리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지만, 과거의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은 되고 싶습니다. 페이스를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아직은 목표하지 않습니다. 그 목표가 이뤄야 하는 일인지에 대해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꼭 다시 달리기 일기에 적겠습니다.
NRC앱에서는 The worst run을 하고 나서도 다시 뛰고 있는 스스로를 축하하라고 했습니다. 일시 정지의 날을 지나, 하프 마라톤의 날을 지나, 영하의 날씨에도 계속해서 뛰고 있는 내가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저의 best run을 뛰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