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글에서는 알콜분해효소인 ADH와 알데히드분해효소인 ALDH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갑자기 왠 생물시간인가 하셨겠지만, 왜 나는 술이 약하지? 왜 나는 숙취가 심하지? 이런 질문에 답하려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상식이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을 하나 그려보았는데요, 알코올(파란색)이 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검은색)로 변하고, 다시 ALDH로 인해 아세트산(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알코올이 빨리 알데히드로 변하는 체질(c,d)은 술에 민감해서 바로 얼굴이 빨개지고, 알데히드가 늦게 분해되는 체질(a,d)일 수록 숙취가 오래가게 됩니다. 검은색 아세트알데히드가 오래동안 체내에 머무는 체질(d)은 술에도 민감하고 숙취도 있습니다.

전세계 사람들 중에서 유난히 (d) 체질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동아시아입니다. 정치 문화적으로 중국, 일본, 그리고 남북 한국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유럽인들이나 북아메리카 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외의 체질(a-c)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술을 잘 마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유럽과 미국 사람들이 술을 훨씬 잘 마십니다. 개인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편은 아니지만, 실제 미국에서 거주하는 동안 미국인이나 유럽출신 친구들과 같이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았는데, 정말 이 친구들은 술을 너무 잘 마십니다. 그리고 술을 잘 안마시는 외국 친구들은 대부분 자신의 선택(신념 및 선호도등)에 의해서 안마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의 비율도 미국과 유럽이 훨씬 많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알코올 중독이 매우 커다란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동아시아인들의 ADH와 ALDH에 대한 연구결과를 몇 가지 살펴보겠습니다. 1) 알코올을 분해하는 ADH의 경우, ADH의 한 변이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매우 높은 빈도로 나타납니다. 이 효소는 매우 빠르게 알코올을 분해하고 따라서 대사산물인 알데히드를 매우 빠른 속도로 축적합니다. 2) 반면 동아시아 집단에서 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ALDH)는 매우 느리게 작동합니다. 결국 알코올은 빠르게 대사되고 알데히드는 쉽게 축적되지만 이 알데히드의 분해는 매우 느린 것이죠. 알데히드는 낮은 농도에서도 독성이 있기 때문에 그리 달갑지 않은 생리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역적으로 보면 중국동부 상하이를 기준으로 동심원을 그려 2천 km가 지나면 앞서 말한 형질의 빈도가 크게 낮아지고 전 세계 나머지 지역 사람들이 보이는 정도로 빈도가 줄어듭니다. 이 거리 안에는 한국, 일본 대부분이 속하고 중국 동부 해안 지역이 포함 됩니다. 인류학 연구 중 이 지역의 인구 집단의 기원이 같다는 가설이 있는데, 유전적으로 이러한 연구를 뒷받침하는 증거로도 활용됩니다. 각지에서 유전자 시료를 구하고, 유전자 서열을 조사한 결과인데, 중국에서 발원한 이런 대립형질은 약 1만-7천 년 사이에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기 중국에서 무슨 일이 있어난 것일까요? 이제 그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이를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가 여럿 진행되었는데, 여러 연구가 공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은 일단 이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이 곳에서 쌀 경작이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쌀의 기원과 재배에 관해서는 고고학적인 증거들이 많이 있는데, 대략 기원적 1만 2천년경 중국의 중부에서 시작된 농경이 서쪽, 남쪽으로 펴져나갔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런데 쌀이 술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술에 약하고 숙취때문에 고생하게 되는 유전형질이 도대체 무슨 도움이 되길래 자연에 의해서 선택이 된 걸까요?

지금까지 연구결과 중에 아직 만족스러운 대답은 없지만, 몇 가지 가능성은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쌀을 보관하는 동안 곰팡이가 많이 감염이 되는데, 인체 안에 높은 아세트알데히드에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체내 아세트알데히드가 높은 사람들이 B형 간염 바이러스에 저항성이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B형 감염은 중국 동부에서 시작된 풍토병이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몸 안에 아세트알데히드를 많이 생성할 수 있는 형질이 선택되었다는 설명이죠. 즉 동아시아인들은 알코올을 대사하지 못하는 능력 대신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저항하기 위한 다른 생물학적 기능이 부여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러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여러가지 다른 방법이 생겨났지만, 유전적인 특성이 변하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러한 점에서 재미있는 점 중에 하나는 작동시간이 느린 ALDH 대립형질이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도 매우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들의 선조가 북동아시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라는 역사적인 정황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아시아 선조와는 다른 종류의 식단을 꾸려온 일부 신세계 원주민들도 있습니다. 그린란드에 사는 이누이트족이나 캐나다 북부 등 추운 지역에 사는 원주민이 그러한 집단인데, 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에너지를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으로 얻어왔습니다. 그결과 이들 북쪽 지방 사람들은 같은 위도에 사는 그들의 친척들과는 다르게 알코올을 천천히 대사시키는 형질(b)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농경문화를 갖고 있지 않은 집단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몽고족이나 만주족, 티베트족은 전통적으로 유족민족으로 분류되는데, 이들은 현재에도 술에 잘 견디고 다양한 종류의 발효주들을 만들어 마셔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증거로보면 쌀에 바탕을 둔 문명권이 빠른 알코올 대사 능력을 보이는데(c), 그 외 주변부 민족들은 이와 반대인 지효성 ADH 대립형질을 갖습니다(b). 즉 한국의 경우 평균적으로 (c) 형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고, 오랜 역사 동안 여러 민족의 유전 정보가 섞여왔기 때문에 다른 형질을 보이는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전적인 이유로 인해 전 지구적 수준에서 보더라도 동아시아의 알코올 중독자의 수는 북미나 유럽에 비해 현저히 적습니다. 대만, 일본, 한국에서 연구된 수행된 연구에 따르면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에 알코올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은 일반 대조군보다 속효성 ALDH 효소를 가질 확률이 10배나 높았습니다. 즉 이들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의 이웃들에 비하여 유전적으로 서유럽 사람들과 비슷했다는 점이죠. 그 결과 아세트알데히드 축적에 따른 부작용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그래서 그렇게 술을 계속 마실 수 있는 것이겠죠). 알코올 중독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좀 더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에서 술에 약한 사람이 많은 이유가 어느정도는 과학적으로 밝혀져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만 하더라도 소주 한잔이 최대 주량이십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유럽 사람들처럼 매 식사마다 와인을 곁들이고 러시아 사람처럼 시시때때로 보드카를 들이키는 문화가 없다는 것도 설명이 가능합니다(농사일을 하면서 중간중간에 막걸리를 마시기도 하지만, 막걸리의 도수는 훨씬 낮죠). 물론 유전적인 영향이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않습니다. 아시다 싶이 세상은 그리 단순하지 않지 않죠. 술에 내성이 생기는 것도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구요. 하지만 우리 몸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겠죠. 그래서 저는 미국친구들이랑 술내기 같은 것은 결코 하지 말라고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ㅋ (아 술 잘 먹는 친구들은 정말 무섭습니다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