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수백만년동안의 포유류를 거쳐서 1만년전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적인 관점에서 이들이 알코올에 왜 긍정적인 생리학적인 기능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범위를 조금 좁혀볼까요? 현인류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아프리카 동부에서부터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동안,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음식을 섭취하며 적응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동안에는 유전적인 변이같은 것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모든 인류가 동일한 종류와 동일한 양의 술을 접하고 살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1만년이라는 시간은 큰의미에서의 진화적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유전자의 변이가 일어나기에는 충분한 시간입니다. 사실 그동안 차이가 발생하였습니다. 즉 알코올에 대한 생리적인 반응이나 알코올 중독에 취약성을 보이는 유전적 변이는 인간 집단에서 여러 번 확인되었습니다. 즉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보다 평균적으로 술을 잘 마신다는 사실이죠. 어떤 집단이 그럴까요?

그 전에 간단한 사실을 하나만 이해하도록 합시다. 알코올이 우리 몸에 들어오면 (1)ADH라는 효소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로 분해됩니다. 이 아세트알데히드는 우리 몸에서 독성을 가집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번에는 (2)ALDH라는 효소에 의해서 아세트산으로 분해됩니다. 이러면 이제 독성물질이 사라지게 되게 되죠. 술을 많이 먹어서 다음날 숙취가 생기고 몸이 힘든 것은 이 아세트알데히드라는 녀석 때문입니다. 그런데 ADH에는 분해의 속도가 빠른 속효성, 그리고 분해의 속도가 느린 지효성, 크게 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속효성 ADH를 가지고 있다고 하면 알코올을 먹는 즉시 이 알코올은 알데히드로 바뀌어버립니다. 그때 나타나는 증상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얼굴이 빨개지는 겁니다. 하지만 지효성 ADH를 가진 사람은 알코올을 먹어도 천천히 알데히드로 변하겠죠. 술을 먹어도 한동안은 별로 티가 나지 않을겁니다.

이번에는 ALDH를 봅시다. 이 효소 역시 속효성과 지효성이 있습니다. 속효성 ALDH는 아세트알데히드를 빨리 분해하는 효소입니다. 즉 속효성 ALDH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독성을 빨리 분해합니다. 즉 숙취가 적습니다. 하지만 지효성 ALDH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오랫동안 몸속에 아세트알데히드가 남아있기 때문에 그 다음날에도 숙취가 이어지게 됩니다.

참고로 이 두 가지 효소(ADH, ALDH)는 서로 다른 염색체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로 유전적인 연관성이 없습니다. 즉 완전히 독립적인 효소들로, 속효성 ADH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속효성 ALDH를 가지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한번 자신의 음주 라이프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효소에 대한 특징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면 (1) 술을 마시자마자 빨리 얼굴이 달아오르고 바로 반응이 오는가(ADH와 관련) (2) 숙취가 얼마나 있는가(ALDH와 관련)를 생각하면 됩니다.

자 그러면 음주자(?)로서 가장 좋은 조합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효성 ADH + 속효성 ALDH 조합입니다. 술을 마셔도 쭉쭉 잘들어가는데 다음날 숙취는 없는 조합입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늦게 생겼다가 빨리 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술을 마시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죠. 가장 나쁜 조합은 무엇일까요? 속효성 ADH + 지효성 ALDH 조합입니다. 술을 마시자마자 바로 반응이 오는데 숙취까지 있는 조합입니다. 이 효소를 가진 주변의 친구들이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나 혹은 주변의 친구가 어떤 효소를 가지고 있을까, 이는 그 친구의 MBTI를 알아맞추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정말로 술이 잘 받는 체질이 있는 것이죠.

참고로 알코올 중독에 가장 효과가 있는 치료제로 디설피람(disulfiram)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보통 안타부스(Antabuse)라는 이름으로 판매가 되는데, 이 약물은 알코올 대사 중간체인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를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즉 이 약을 먹으면 술을 먹은 후에 아세트알데히드의 부작용이 오래가고 몸이 힘들어지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술을 많이 못 마시게 만드는 것이죠.

이 두 효소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셨다면 이제 다음 질문을 생각해보세요. 전 세계에 거주하는 인류 집단 중에 앞서 언급한 슬픈 조합(속효성 ADH + 지효성 ALDH)을 가진 집단이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이러한 효소를 가진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집단보다 훨씬 높은 집단이라는 의미이죠. 어디일까요? 그리고 이유가 있을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