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진화적인 관점을 통해서 과일은 왜 알코올을 만들어내는 효모를 가만히 두는지에 대해서, 알고보니 효모는 박테리아등 다른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하여 알코올을 생성하고, 이는 효모 뿐만 아니라, 과일을 맺는 식물과, 그리고 그 과일을 먹는 동물 모두에게 행복한 일이라고 설명드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알코올의 또다른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나무가 무성한 열대 정글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뺵뺵하게 나무를 비롯한 식물로 뒤덮여 있는 이 정글은 온갖 녹색 빛입니다. 과일 자체를 맺지 않는 식물들도 많고, 과일을 맺는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시간에는 과일이 생장하기 전이거나, 과일이 달려도 녹색의 과일이 달려있을 것입니다. 김병만씨의 히어로 예능 '정글의 법칙'에서는 항상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과일 나무를 찾는 것이 몸으로는 가장 편한 방법이긴 하지만 가장 성공률이 낮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찾기도 힘들고 잘익은 과일을 얻기는 더욱 힘듭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사냥을 하는 것이 더욱 소득이 크죠(거의 그렇게 해서 음식을 얻습니다). 일반 생물들에게 이러한 환경에서는 이파리를 먹는 것이 오히려 가장 좋은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곤충이 아닌 일반 동물이 잎을 주식으로 한다는 것은 소화기관에서 너무 큰 일을 해야 되는 의미입니다. 생존을 위해서 너무 큰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야 되는 일입니다(팬더는 그렇게 하긴 합니다.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하죠).

그런데 이는 과일 입장에서도 생존이 걸린 문제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맛있는 과일을 맺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신이 맺은 열매의 존재를 다른 동물들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녹색의 향연으로 뒤덮혀 있는 곳에서 자신이 풍성한 탄수화물을 지니고 있다고 광고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전략은 자신의 색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붉은색, 오렌지색, 푸른색등으로 과실의 색을 바꾸어, 녹색으로 가득차 있는 곳에서 자신의 존재를 차별화해야 합니다. 이는 많은 조류들에게 통하는 방법입니다. 조류들은 빽뺵한 밀림 위로 날아다닐 수 있으므로 나무 윗부분에 달린 과일들을(대부분 과일들은 위에 달립니다) 색을 보고도 잘 찾을 수 있죠. 조류의 색감지 능력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하지만 육지동물들에게는 색상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뺵뺵한 밀림에서는 과일 가까이에 가야만 색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것도 컬러로 색을 볼 수 있는 몇몇 포유류에게만 해당되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과일은 또 다른 방법을 이용합니다. 바로 동물들에게 매력적인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싶이 잘 익은 과일은 매력적인 향기를 뿜어냅니다. 유기 화합물에서 유래한 다양한 향들은 상당수가 휘발성이 있고 과일 표면에서 기화됩니다. 바람이 불면 이들은 숲 속으로 퍼져 나가서 동물들을 유혹하게 됩니다.

효모가 만드는 알코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에틴올(C2H5OH)입니다. 분자식을 잘 보시면 탄소가 2개 밖에 없는 가벼운 기체입니다. 즉 기화되기 쉬워서 멀리까지 떠다닐 수 있는 기체입니다. 에탄올 또한 다른 방향성분과 함께 숲을 떠돌게 됩니다. 이 에탄올은 다른 동물들에게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탄수화물이 풍부한 과일이 있다는 것을 바로 전달할 수 있는 매게체입니다. 많은 동물들은 뛰어난 후각을 가졌으므로 이들에게 매우 효율적인 전달수단으로 사용될 수가 있겠죠.

곤충 세계에는 이러한 분자단위의 전달 매체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수컷 나방은 가임 상태의 암컷의 냄새를 감지하자마자 수십 킬로미터를 날아가기도 합니다. 포유류 중에서도 설치류는 후각이 좋기로 유명하죠. 그러면 포유류 중에 가장 후각이 퇴화되었다고 평가받는 영장류는 어떠할까요? 10년 전만 하더라도 영장류의 후각 반응은 다른 포유류에 비하여 보잘 것 없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의 행동학적, 생리학적 연구로 인해 영장류 역시 발효 산물인 알코올과 그와 비슷한 유기 화합물의 냄새를 충분히 맡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만약 영장류들이 잘 익은 과일을 무더기로 발견한다면, 그들은 색을 보고 향기를 맡아보고, 눌러보며 촉감을 느낍니다(슈퍼마켓에서 사람이랑 하는 행동이랑 똑같죠). 많은 영장류들이 잘 익은 과일들을 킁킁 대며 냄새를 맡는 모습에서 다른 에스테르와 함께 알코올 냄새 또한 과일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선택한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영장류도 종류가 나뉩니다. 아프리카의 구대륙 대형 유인원이나 조류들은 녹색과 다른색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직 먹지말라는 과일의 경고, 즉 녹색 과일은 색만으로도 이들은 섭취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 신대륙 원숭이들은 그러한 삼색각을 진화시키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구대륙 원숭이보다 더 뛰어난 후각을 가졌습니다. 즉 과일이 익었다는 의미의 휘발성 물질의 냄새를 보다 잘 맡을 수 있고 그것으로 과일의 섭취 가능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나무가 무성한 정글에서 각 과실나무들은 각고의 노력 끝에 잘 성숙시킨 과일을 다른 동물들에게 광고해야 합니다. 그 때 두가지 전략, 즉 색상과 휘발성 향기를 이용합니다. 그 중 휘발성 향기의 많은 역할을 알코올, 즉 효모가 담당하게 됩니다. 식물은 자신의 탄수화물의 일부분을 효모에게 희생하면서 동물들을 유혹하게 되죠. 동물들은 그 향기를 맡고 잘익은 과일을 찾아 자신의 배룰 채우고 씨앗을 운반합니다. 역시나 여기서도 석물-효모-동물은 서로 유익하게 공존하게 됩니다.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는 이러한 이유로도 우리 자연에게 선택되었습니다.